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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으로 전투 프로토타이핑에 들어가면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경기에 나가는 플레이어 수를 얼마로 할 지 정하는 것. 역시나 이것도 테스트 플레이를 해보지 않고서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알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충 2대2 ~ 5대5 정도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서 테스트한 후 정하자고 이야기했다.

 

 우선은 당연히 2대2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팀당 플레이어 수가 많으면 그만큼 만들어야 하는 챔피언도 많기 때문이다. 2대2에서의 밴픽은 블루팀 1개 밴 - 레드팀 1개 밴 - 블루팀 1개 픽 - 레드팀 2개 픽 - 블루팀 1개 픽 순서대로 진행하게 했다. 블루팀은 좋은 챔피언을 먼저 가져올 수 있으며 마지막 픽에서 상대의 조합을 보고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레드팀은 한 번에 두 개의 픽을 가져오기 때문에 시너지가 나는 조합을 바로 완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밴픽을 진행하려면 최소한 6 종류의 챔피언이 필요하기 때문에 6종류의 챔피언을 완성하고 이걸 기반으로 밴픽을 테스트해보았다. 맨 처음 만들게 된 챔피언은 검사, 닌자, 궁수, 화염술사, 격투가, 성직자의 6종류였다.

 

 

맨 처음 만들었던 밴픽 형태는 이런 모양이었다. 로직을 빨리 테스트해보는게 중요하다보니 디자인은 아예 생각 안하고 기본 UI 그래픽으로 구분만 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밴픽 AI를 개발하는 것도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라, 이 시점에서는 AI는 그냥 랜덤하게 챔피언을 고르고 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위와 같은 밴픽 과정에 아래와 같은 시뮬레이션을 붙여서 게임 플레이를 만들고 테스트해보았다. 처음 만든 각 6개 챔피언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게 했다.

 

- 검사: 표준 근접 딜러. 적당한 딜링, 적당한 탱킹

- 닌자: 빠른 이동, 공격 속도를 가진 암살자

- 궁수: 표준 원거리 딜러

- 화염술사: 광역 데미지 공격을 하는 마법사

- 격투가: 표준 근접 탱커

- 성직자: 힐러(공격 불가)

 

 흔히 볼 수 있는 RPG게임의 전투에서의 표준적인 딜링, 탱킹, 힐링 요소를 위주로 생각하고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고 나서 테스트를 해보니, 전투가 처음에 우려했던 것처럼 한쪽이 밀리기 시작하면 이기기가 힘들기도 하고, 경기 진행에 별로 변수라고 할만한게 없어서 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밴픽의 경우도 챔피언이 6개밖에 없어서 모든 챔피언이 밴 or 픽되기 때문에 선택지가 좁아서 할 수 있는게 너무 적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테스트한 건 1. 챔피언 수를 늘리고 2. 기본 공격 외에 스킬을 추가하자 는 방향이었다. 챔피언은 몽크, 기사를 추가해서 총 8종류로 만들었다. 챔피언 별로 추가한 스킬은 다음과 같았다.

몽크

 

 

몽크는 아군 한명 + 자기 자신의 체력을 소량 회복하는 형태의 스킬을 줬다. 근접 탱커 + 소량의 힐을 통한 유지력을 기대할 수 있는 챔피언.

격투가

 

 

격투가는 상대의 공격을 방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스킬은 근방 일정 범위에 있는 적들을 잠깐 경직(행동을 끊음)시키며 데미지를 입힌다. "CC 위주의 탱커" 느낌.

검사

 

 

검사는 상대를 에어본시키면서 강한 데미지를 가하는 단일 타겟 스킬을 줬다. 격투가와 비슷하게 CC지만 좀 더 단일 타겟에 대한 데미지와 견제에 집중하는 느낌.

닌자

 

 

닌자는 원래 암살자 컨셉으로 만들었는데, AI가 전부 제일 가까이 있는 상대만 노리다보니 암살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순간이동 돌진을 통해 적 딜러에게 빠르게 접근해서 공격할 수 있는 형태의 스킬을 줘서 암살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궁수

 

 

궁수는 카이팅하면서 공격하는 원거리 딜러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형태의 스킬을 추가했다. 뒤로 빠르게 한 발 물러나며 상대를 경직시키는 스킬.

화염술사

 

 

화염술사는 원래의 컨셉인 광역 데미지에 초점을 둬서, 일정 시간동안 유지되는 화염 방패를 두르는 스킬을 추가했다. 궁수 같이 스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원거리에서 공격해서 잡아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걸 의도했다.

성직자

 

 

성직자는 본인 + 아군 하나에게 공격 속도를 증가시키는 실드를 부여하는 스킬을 쓰게 했다. 힐러라는 본연의 컨셉에 완전히 맞춰서, 딜링은 전혀 기대할 수 없지만 대신 높은 유지력과 버프를 얻을 수 있게.

기사

 

 

기사는 높은 탱킹력 및 탱커의 덕목인 어그로 가져오기를 수행할 수 있는 스킬을 줬다. 스킬을 통해 적 하나에게 도발을 부여해서 어그로를 본인에게 끌어올 수 있다.

 

이렇게 스킬을 추가하고 나면 챔피언 별로 특색이 생긴다. 이 특색을 기반으로 밴픽 과정에서 몇 가지 조합, 상성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케이스가 있다.

 

 - 상대가 근접 캐릭터 2픽 : 화염술사로 카운터. 화염술사가 데미지를 넣는 동안 보조해줄 탱커가 있으면 좋다.

 - 성직자를 뽑을 경우 닌자로 카운터

 - 닌자가 밴된 상태 or 상대가 강한 단일 딜러를 가져가지 않은 경우: 성직자 + 기사 조합으로 상대의 모든 데미지를 무시하며 버텨서 1~2킬 차이로 승리

 

 여기까지 만들고 나서 다시 테스트를 해보니 조합별 특색도 어느 정도 뚜렷해져서 밴픽을 통해 원하는 조합을 가져오고, 시뮬레이션을 보면서 그 조합이 잘 동작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꽤 재밌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밴픽이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고 흥미로운 매커니즘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챔피언별 특색을 좀 더 강조하고 전투의 흐름을 다채롭게 만들면 밴픽만으로도 아주 풍부한 게임 플레이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조금 더 자세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흥미로운 부분

 일반적인 자동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은 "내가 소유한, 성장시킨 캐릭터"들을 써서 싸움을 하는 방식이다. 반면 우리게임에서의 밴픽은 내가 매 경기에 사용할 캐릭터가 고정적이지 않고, 특정 캐릭터의 사용을 금지 당하거나 / 상대가 내 캐릭터를 뺏아가거나 하는 상황이 나오기 때문에 매 상황, 매 순간 상대의 선택에 내 조합이 영향을 받아 매번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항상 고정적인 조합의 전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른 조합끼리의 전투를 보게 된다는 점이 전투 시뮬레이션이 쉽게 질리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밴픽 과정에서 내가 생각했던 의도가 전투에서 그대로 드러날 때 느낄 수 있는 재미(상황이 내 의도대로 돌아간다는 느낌에서 오는)도 좋았다.

 

 그리고 전투를 지켜보면서 계속 다음 경기의 밴픽을 생각하게 되는데, 경기 진행을 보면서 직관적으로 내가 짰던 전략을 피드백하고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 전투 시뮬레이션에 대해 깊게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점도 좋았다.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들

 스킬을 넣는 것만으로도 전투가 어느 정도 다채로워졌지만, 좀 더 크게 전투의 흐름을 바뀌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롤을 예로 들자면 라인전에 주력을 두는 픽이 있고 한타에 주력을 두는 픽이 있을 수 있는데, 이와 비슷하게 특정 시점에 힘을 주는 픽, 초중반엔 약하지만 후반엔 게임을 뒤집을 수 있는 픽 같은게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각 챔피언마다 전투에서 딱 한 번 쓸 수 있는 "궁극기"를 두고, 이 궁극기를 이용해 게임에 변수를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각 선수마다 잘 다룰 수 있는 챔피언의 종류(챔피언 폭)에 차이가 있어서, 이걸 신경 쓰면서 밴픽을 하게 만들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흔히 "장인"이라고 부르는, 특정 챔피언을 잘 다루는 선수가 실제로도 존재하기도 하고. 이런 선수 때문에 특정 챔피언이 주류 픽이 아니라도 밴을 하거나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 자체가 밴픽 과정에서의 플레이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줄 거라고 봤다. 이를 위해서라면 챔피언을 먼저 픽하고 어떤 선수가 그 챔피언을 쓸지 고르는(흔히 스왑 과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에 숙련도와 스왑 기능을 넣자는 생각도 했다.

 

 또 당연한 거지만 챔피언 종류가 충분히 늘어나는 것 만으로도 밴픽이 훨씬 재밌어질 것이고, 여기에 밴픽 AI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만 똑똑하게 플레이한다면 플레이어가 밴픽 기반의 전투에서 아주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한정적인 2대2 전투에서도 생각 외로 다양한 조합과 전략이 나와서 더 많은 개수의 챔피언을 기반으로 3대3, 4대4 전투를 한다면 정말 다양한 조합과 전투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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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지금의 토대는 충분히 괜찮고, 밴픽 기반의 전략이 게임을 이끌어나갈 핵심적인 매커니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재미를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전투 및 밴픽의 기본적인 프로토타이핑은 끝냈다. 그리고 전투 및 밴픽에 관한 부분을 좀 더 개선하기 전에 먼저 시선을 조금 돌려서 "팀의 성장과 운영"에 관한 부분을 설계하고 테스트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 이 부분은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 부분에서 엄청 많은 시도와 실패가 있었고 여전히 여러모로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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